• 2019. 11. 25.

    by. Conpresent

    언제나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항상 잘하고 싶었고, 가장 빠른 길로 가서 그 결과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실수를 저질렀고, 잘하지 못했고, 내 생각만큼 빠르게 가진 않았던 것 같다.

    삶의 방식이 그러하듯 내 신앙도 그러했다.

    나름 큰 시련없이, 흔들림 없이 살아왔기에, 신앙도 큰 시련 없이, 흔들림 없이 지켜온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문제라고 여겼다.

    시련과 흔들림 없는 신앙은 뿌리가 깊지 않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내 삶에 시련이 올 때 내 신앙은 더 성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에 따라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삶의 어려운 순간을 담담하게 감내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혼자서 쓸데없이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시련에 힘들고 당황하여 그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존심도 있었다.

     

    그러나 내 삶을 돌아보니 역시나 내가 예상한 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삶은 꾸준히 평탄한 듯했지만, 되돌아보면 흔들림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부딪혔던 시간들이 분명 존재했고, 나는 흔들렸고, 그게 내게 찾아온 방식의 시련이었다. 가장 나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폐부를 찔렀다.

    왜 그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수년이 지나고 나서, 그리고 결국 그때보다 한번 더 크게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늘 들었던 말씀 느헤미야 4장 1-23절을 다시 곱씹어보며 나에 대한 반성과 다짐을 정리하려 한다.

    세상은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첫 번째로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조롱한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은 유다 백성들을 찾아와 그들을 낙심하도록 말을 한다.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 (느 4:2 새번역)

    그의 곁에 서 있던 도비야도 이와 같이 말한다.

    "다시 쌓으면 뭘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 (느 4:3 새번역)

     

    말 한마디가 누구에게는 가슴 깊이 상처를 주는 말이 되곤 한다. 특히나 내가 중요하게 여기며 생각하는 것을 건드리는 말은 폐부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을 재건하고 있었지만, 이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성전을 다시 과거와 같이 아름답게 지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 이런 얘기는 그들의 의지를 꺾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산발랏과 도비야가 의도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지도자 느헤미야는 이들에게 직접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느 4:4-5 새번역)

    그리고 이들은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백성이 마음을 모아서 열심히 일했다. 어떠한 시련에도 이들은 한 마음이 되어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성벽 두르기를 마쳤다. 하지만 높이는 반밖에 쌓지 못했다.

     

    화려했던 과거만큼,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련이 올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고, 마음을 들여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비웃고 조롱하는 것에 넘어지지 않자, 세상은 더 과격하게 우리를 대한다.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랍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잘 돼가고 있으며, 군데군데 무너진 벽을 다시 잇기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몹시 화를 내면서 한꺼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성을 치기로 함께 모의하였다.
    (느 4:7-8 새번역)

    우리의 원수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쳐들어와서 우리를 죽여서, 일을 못하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들 가까이에서 사는 유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올라와서, 그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치려고 한다고 열 번이나 일러주었다. (느 4:11-12 새번역)

    세상의 위협은 더 불어난다.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싼 대적은 서로 힘을 합쳐 성을 치기로 모의하고, 10번이나 우리를 치려고 위협하였다.

     

    누군가가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 삼지 않고 쿨하게 넘겨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만약 대적의 위협 소식을 열 번이나 듣는다면, 누구라도 쉽게 지치고 흔들릴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유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노래가 퍼지고 있었다. '흙더미는 아직도 산더미 같은데, 짊어지고 나르다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 힘으로는 이 성벽 다 쌓지 못하리'. (느 4:9-10 새번역)

    세상이 비웃고 조롱할 때 그러했듯,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지만 열번이나 지속되는 위협 소식에 이스라엘은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잔뜩 긴장하며 대비태세에 계속 있던 이들은 실제로 다가오지 않는 위협에 점점 더 지치게 되고, 오히려 이들은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 이들의 지도자인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선다.

    나는 백성 가운데서 얼마를 가문별로, 칼과 창과 활로 무장시켜서, 성벽 뒤 낮은 빈터에 배치하였다. 백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 (느 4:13-14 새번역)

    그 날부터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 가운데서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다. 관리들은 성벽을 쌓고 있는 유다 백성 뒤에 진을 쳤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성벽을 쌓는 이들은 저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였다. 나팔수는 나의 곁에 있게 하였다. (느 4:16-18 새번역)

    "하여야 할 일이 많은 데다, 일하는 지역이 넓으므로, 우리는 성벽을 따라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어디에서든지 나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 와서, 우리와 합세하여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서 싸워 주신다." (느 4:19-20 새번역)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에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기도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다가오지도 않은 위협에 두려워했다. 열 번이나 반복되는 위협이었지만, 실제로 이것이 그들을 위협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위협에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가오지 않은 위협에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힘이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에 대응하지 않고 우선 기도하였다.

    청년 세대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삶의 가치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쉽게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 위협에 대해 기도하지 않기에 불안하며 두려워한다. 학업문제, 취업문제, 연애, 결혼 문제 등 교회 내 청년들을 흔드는 문제들이 다양하다. 우선 기도하자.

    둘째, 격려하라.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문제, 위협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 잊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을 격려하여 우리가 이 위협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의 즉슨, 우리의 손에 교회와 다음 세대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밀리면 다음세대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싸워야 한다. 서로 격려하자.

    셋째, 무장하라.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다가오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장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장했던 것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엔 짐을 들고, 다른 한 손엔 무기를 잡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을 우리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안일하게 우리의 무기를 놓으면 안된다. 우리는 항상 짐과 무기를 들고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세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반은 짐을 나르며 성을 건축하고,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하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향하여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뉴스를 보면 참 많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사회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가정까지 파괴가 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도 참 많은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모이지 않으려 하는 이들도 참 많음을 볼 수 있다. 교회 공동체의 회복을 통하여, 가정 공동체가 회복되고, 사회의 회복을 기도한다. 공동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결코 홀로 이겨낼 수 없다. 

     


     

    한 목사님의 설교 중에 그런 말씀이 기억난다.

    청년들에게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 "이젠 세상이 변했어요". 나조차도 이런 말을 전혀 어떠한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지도 모르고, 

    목사님은 이 말에 이렇게 되물으신다. "대체 무엇이 세상을 변하게 했는가?"

    '세상은 어떻게 우리를 변하게 하는가?' 

    내가 교회학교 교사라는 것이 때로는 부끄럽다. 나는 아직 너무나도 배울게 많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수도 많고 많이 무너지고, 행복과 기쁨을 굳게 손에 쥐지 못하고 마치 손에 쥔 모래가 빠져나가듯 쉽게 잃어버리고 후회한다. 또한 여전히 일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지켜내기 위한 씨름을 하고 있다. 

    나는 교만하게도 내게 홀로 세상을 이겨낼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는 그러한 레벨이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캄보디아에서도 좋은 교회와 좋은 공동체를 붙여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 다만, 아이들이 교회에서 자라 세상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와 함께 성장해가는 것이 내게 맡겨진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기도하고, 격려하고, 무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