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7. 9.

    by. Conpresent

    Hermann - St. Charles
    허먼의 아침

    0. 허먼의 아침은 고요하다. 그리고 예쁘다.

    뭔가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것만 같다. 아마도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 마을에 들어올 때, 미주리 강을 건너서, 이 동네로 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시간여행을 하거나,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강을 건너 허먼이라는 미지의 동네로 들어왔다가 다시 강을 건너 현실로 복귀하는 것 같다.

    1. 버라이존이 터지지 않던 동네를 벗어나자 얼마 되지 않아 휴대폰이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오늘 또한 90킬로로 어제와 비슷하게 상대적으로 평소보단 짧은 거리다. 이번에 세인트루이스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는, 도심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복잡하고, 위험할뿐더러, 우리는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강을 또 건널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웜 샤워를 찾기도 힘들었던 것도 한 몫한다. 수많은 웜 샤워들이 있지만, 열어두기만 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분들도 많이 있었고, 세인트 루이스가 피츠버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웜 샤워에게 연락을 보내봤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러한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숙박비를 아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2.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Katy Trail을 따라 달렸다. 오늘은 그래도 좀 숲바로 옆으로 지나가고, 숲을 통과해서 지나가기도 하면서 그늘로 자주 지나갈 수 있었다. 사실 케이티 트레일에서 펑크가 쉽게 나지 않을까 하고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루에 펑크가 한 번도 안 나거나 한번 정도 났다. 그 정도면 여태까지 우리가 해왔던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 한 달을 넘게 장거리 라이딩을 하다 보니 타이어를 교체할 때가 되었다. 사실 나는 타이어를 캔자스시티에서 한번 교체를 했고, 혹시나 또 교체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호준이꺼를 미리 사두었었다. 호준이는 처음 서부에서 시작한 타이어 그대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 타이어를 정말 오랫동안 교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정도 여기까지였다.

     

    오늘 또 호준이의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는 좀 더 자세히 타이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타이어가 더 이상은 갈 수 없을 만큼 닳아 있었다. 이 정도면 조그만 돌이라도 부딪히면 금세 펑크가 날 것 같았다. 처음부터 함께한 것이기에 아쉽긴 했지만,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매일 이 정도씩 달리면 타이어가 한 달이면 다 닳는구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짐을 잔뜩 실었기에 더 빨리 닳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타이어를 잘 만든다는 컨디넨탈의 게이터 스킨을 구매했다. 확실히 더 딴딴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타이어는 조금 흐물흐물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게이터 스킨은 빳빳하다. 이것이 좀 더 펑크를 막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체했다. 빳빳하다 보니 타이어 교체도 쉽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둘이서 함께 교체를 하고 나서 우리는 지쳤다. 

    3. 오늘도 katy trail 근처에 있는 로컬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여기는 진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는데, 큰길과 자전거길이 서로 마주하는 그 깃에서 아주 약간 벗어나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식당에 세워두고, 안에 들어가서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며 잔뜩 열을 받은 몸을 식혀주었다. 오늘의 점심메뉴는 역시나 미국, 햄버거였다. 사실 제일 만만하지만, 프랜차이즈보다 로컬 식당에서 먹는 햄버거가 훨씬 더 맛있다. 아주 먹스럽게 생긴 버거를 입에 넣으며 배를 채우고, 다시 또 라이딩을 했다.

    4. 라이딩을 하면서 웜샤워와 연락을 취할 때 나는 도착 며칠 전부터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만, 도착하는 날이 가까워서는 좀 더 자주 한다. 도착 전날 저녁에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다음 날 충분히 거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평소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대를 말해준다. 그리고 당일 날,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출발할 때 연락을 하고, 점심시간 때쯤,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확실한 도착시간을 전한다. 그리고 웜 샤워들과 연락을 통해서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조율한다.

    5. 오늘 세인트 찰스에서 머무는 웜샤워는 농업기계 관련한 쪽 일을 한다. 그리고 아내와 자녀 세명이 함께 본인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지금 자전거 타는 대회에 나가서 집을 비웠고, 그는 우리와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내를 따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가 평소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3시쯤으로 조금 이르게 도착하는 편이라 웜 샤워 호스트가 집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우리가 온다는 것을 말해놓을 테니 편하게 오라고 했다. 

    6. 드디어 웜샤워의 집에 도착을 했다. 마지막에 그의 집을 찾기까지가 조금은 힘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집들이 좀 언덕에 있다. 그래서 항상 웜 샤워의 집을 거의 다 오더라도 언덕을 좀 더 올라가야 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주소를 알더라도 막상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길가의 표지판을 보고, 그리고 집마다 붙어있는 우편함 번호를 보면서 찾아야 한다. 

    7. 오늘이 수요일이란걸 생각해보고, 그래도 세인트 루이스 근처니깐 혹시 한인교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개의 한인교회가 나왔다. 그중 한 7킬로 정도 떨어진 거리에 괜찮은 것 같은 한인교회가 있었다. 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무작정 청년부 담당 목사님께 문자를 드렸다. 

    '미국 횡단을 하는 청년인데, 하던 도중 세인트 루이스에 들렸다. 수요예배를 가고 싶은데 거리가 좀 멀어서 그런데 혹시 픽업을 부탁드려도 괜찮겠냐'라고 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목사님으로 부터 연락이 왔고, 근처에 사는 청년이 있으니, 예배에 올 때 픽업해서 올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면 몇 시에 청년 한분이 픽업을 가겠다고 하셔서, 나는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수요예배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고, 또한 오늘이 마침 수요일이어서 예배가 있었음에 감사했다. 

    역시나 교회사람이라 그런지 교회를 가면 마음이 참 편하다. 처음 가는 곳이어도 그렇다. 이렇게 매번 새로운 공간에 가는 경험을 하는 것도 내게는 참 좋은 경험이고 감사하다. 그리고 정해진 예배 시간이 아닌 특별할 때만 예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집중이 되는 것 같다. 시간이 정해지고, 장소가 정해져서 틀에 박히고,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린 예배는 가끔 나를 나태하게 만든다. 이렇게 변화를 통해 또 한 번 배우고,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예배 이후 목사님과 청년 몇명들과 함께 늦은 식사를 하러 Denny's로 갔다. 그곳에서 함께 얘기를 좀 나눌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세인트 루이스에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리에서 있던지, 주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8. 기분좋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길어졌다. 늦은시간에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든 가족을 다 깨울 것 같아서 좀 아닌 것 같았고, 우리가 머무는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호준이랑 계속 연락하면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문을 잠그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9시쯤에는 들어갈 줄 알았는데, 얘기를 하다보니 11시까지 길어졌다. 빨리 자야 내일 좋은 컨디션으로 라이딩을 할 수 있기에 가자마자 자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집을 도착해서 문을 열려는데, 

    어..?! 문이.. 잠겨 있다..?! 호준이에게 카톡을 다시 보냈다. 그러나,, 호준이는 답이 없다.. 닫힌 문을 손으로 치면서 호준이를 외쳤다. 혹시나 호준이가 잠에서 깨길 바라며,,. 그러나 아무런 미동도 없다.

    순간 머리 속으로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벨을 누르고 대문으로 들어가야하나..? 아니면 집주인한테 연락을 해야하나? 밤 11시인데..? 에이, 남한테 피해주느니 차라리 문 앞에서 노숙을 하자. 이렇게 처음으로 노숙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 무렵, 집주인 아들의 번호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처음 집에 도착할 때, 그와 연락을 하면서 집에 들어갔기 때문에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잠들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앤디, 나 오늘 너희집에서 머무는 게스트인 제이야, 정말 미안한데 혹시 자고 있어..?", 

    제발.. 제발.. 제발 자고 있지 말아라..

    .

    .

    .

    "아니, 아직 안자, 무슨 일이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ㅜㅠㅜㅜㅡ 

    "나 근처 교회갔다가 시간이 좀 늦어져서 이제 돌아왔는데, 아래쪽 문이 잠겨 있어서 못들어가고 있어, 혹시 문좀 열어줄 수 있어?"

    "ok, 바로 내려갈게"

    그는 금세 내려와서 닫힌 문들 열어주었다. 

    "진짜, 고마워. 내가 좀 늦을 것 같다고 친구한테 열어놔 달라고 했는데, 잊었나봐. 오늘 밖에서 자야하는 줄 알고 걱정하다가 너 번호가 있는게 생각이 났지 뭐야,"

    "아, 문이 열려있길래 내가 잠궜었는데, 그래서 열어뒀었구나! 미안해"

    "아니야, 내가 감사하지, 잘자!"

    "잘자!"

    정말 하마터면 밖에서 잘뻔 했다. 하지만, 밖에서 자더라도 감사하려고 생각은 했었다. 아마도 교회를 다녀와서 그런지, 마음이 평온했던 것 같다. 그래도 편하게 쉴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빨리 자고, 내일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