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3. 12.

    by. Conpresent

    나는 카투사 군종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그때 함께 일했던 목사님은 내 삶에 참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첫인상은 여전히 선명하다. 머리카락을 완벽히 다 밀고 180 정도 되는 제법 큰 키에 약간은 마른 듯하지만, 탄탄한 몸을 가진 그가 나에게 악수를 건네며, 미국 남부지방 특유의 사투리를 쓰며 호쾌하게 이름을 물어보며 나를 맞이했다. 그는 나를 '백'이라고 불렀다.

    1. 직장에서의 선한영향력

    2월에 처음 만나 사계절을 한번 보내고 그해 여름까지 17개월을 함께하며 그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을 잘해서 상사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 상담을 받으러 군목실로 찾아오는 병사들이 자주 있었으니 병사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모두를 편하게 하는 웃음소리와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주는 그의 모습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를 보며 그와 같이 믿을 수 있고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2. 좋은 남편, 아버지의 역할

    목회를 하다가 군인 사역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었고, 가족과 함께 기도하며 군목으로 입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9년째 복무 중이었는데, 매년 온 가족이 군사역을 더 하는 것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사모님과 네 명의 자녀와 함께 한국에서 3년째 지내고 있었고, 가족 모두가 한국을 정말 좋아했다. 목사님은 사모님과 아이들과 매일 통화를 했는데, 항상 통화하면서 "Bae"라고 부르고, 통화를 마칠 때는 "Love you"라고 했는데 그렇게 달달할 수 없었다. 내가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잔뜩 긴장하고 일할 때, "Bae"라는 단어가 그의 방에서 들리면 나를 부르는 줄 알고 그의 방으로 가곤 했다. 그러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생각난다.

    하루는 목사님 생일이라고 가족들이 돈을 모아서 Boss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했었다. 그때 사무실에서 한동안은 그것으로 기독교 라디오 방송인 K-Love를 계속 틀고 스피커가 정말 좋다면서 자랑을 정말 많이 했었다. (했던 말을 또 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3. 신앙의 공동체

    한 대대를 담당하는 군목이면서 그는 부대 내에 있는 교회를 담당했었다. 그래서 주일에는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그는 남침례교의 목회자이기에. 나 또한 그의 설교를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매주 그의 설교를 들으며 많은 성도가 위로와 도전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때로는 평일에 교회에서 교인과 상담을 하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목회자가 다른 성별의 내담자와 상담을 할 때는 문을 열어두거나 혹은 군종병이 같은 건물 안에 있어야 하는 원칙이 있다. 그는 항상 그것을 지키며 누군가와 상담을 할 때 매번 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교회사역에도 함께 다니다 보니 하루는 부대 내의 수영장에서 그가 한 중대장의 아내에게 침례를 주는 현장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 평생 세례만 봐오던 내가 침례를 목격하는 순간이었고, 나름 신선했다.

    또한 매달 그가 주는 신학책의 한 챕터를 읽고 감상문을 써오면 첨삭을 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신앙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소령으로 진급하여 계속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일과 가족과 신앙을 모두 잘 잡으며 지내던 그의 모습이 지금을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나의 모습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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