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2. 13.

    by. Conpresent

    북커버 (출처: yes24)

    2020년을 시작하며 새책을 읽었다.

    다 읽은 것은 1월이나 계속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야 늦은 리뷰를 쓴다.

     


     

    이 책의 부제는 "평범한 일상에서 배우는 진짜 신앙 이야기"이다. 사실 많은 분들이 제목이나 부제가 관심을 끌었다기보단 이 책의 표지가 눈을 끌지 않았을까 싶다. 표지를 보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지 않은가? 

    그렇다. 

    라라랜드의 한 장면

    바로 이 장면은 흥행을 불렀던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을 오마쥬한 것이다. 

    너무나도 좋지 않은가? 예수님과 우리가 함께 춤을 춘다는 것. 무언가 기독교에 가볍게 다가가도록 그리고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이끄는 그러한 책 표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표지를 자세히보면 횡단보도같이 생긴 길 위에서 그리고 옆에는 신호등이 있다. 이것도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다가 이내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공간이기에 넣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했다. (혹시나 좋은 뜻이 숨겨져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프롤로그에서 이런 작가의 말이 있다.

    이미 예수님을 알고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진리를 조금은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고, 이제 막 예수님을 알고 신앙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쉬우면서도 잊히지 않게 만들어 주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전자에게는 이전에 익숙했던 기독교와는 안녕(Bye)이라는 의미가 되고, 후자에게는 이제 새롭게 만나는 기독교에 대한 안녕(Hello)의 의미가 되는 중의적인 제목의 "안녕, 기독교"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서 읽는 모두가 Hello이든, Bye이든 '살아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Hello이든, Bye이든 '살아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위해, 뭔가 교훈을 주기 위해, 뭔가 책을 통해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이 책을 쓰지 않았다. 그가 겪었던 '살아나는' 경험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당시 그가 했던 생각을 통해 우리도 우리의 '살아나는' 경험을 삶 속에서 써 내려가길 원한다.

    어떻게든 멋있게, 누군가에게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예쁘게 포장한(어렵게 쓴) 글보다 조금은 투박하고 가벼운 이런 글이 더 좋다. 읽으면서 '어, 나도 이랬던 경험이 있는데.. 근데, 생각해보니 신앙적으로는 이렇게 적용이 될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재작년, 작년에 핫했던, 이기주작가의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과 같이 짧은 에세이의 기독교 버전이라고 보면 책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쉬울 것 같다. 

    긴 글은 읽지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라 그런가 짧은 호흡으로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저마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니, 에피소드에서 저자는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그의 관찰력과 섬세함이 오늘의 이 책이 나오게 한 듯하다.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성경 속에서, 교회 속에서만 복음을 찾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사회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녹여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사람과 사회를 유심히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마침내 기독교와 '안녕'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 우리는 너무나도 바쁘게 그리고 또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역사적인 일들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신앙이 무너져버린 이 시대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너무 바빠 내 일상 속에서 신앙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 신앙은 점차 갉아먹히면서 내 생각과 행동들이 다시 내 본성으로 쉽사리 되돌아가 버리곤 한다.

    바쁜 하루, 지하철 세 정거장 갈 거리면 한 에피소드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짤막한 글이 오늘의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오늘도 우리 '안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