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5. 3.

    by. Conpresent

    인간의 품격, 데이비드 브룩스, 출판사 부키

    1. 5년의 시간

    이 책은 내가 5년전 군대를 전역하고 처음 산 책이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산 건 아니고, 페이스북의 한 페이지에서 홍보하는 것을 보고 샀다. 흔히 말해 SNS 마케팅에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펼쳐서 읽었으나 나에겐 어려웠다. 왠지 모르게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어려웠고, 책 내용은 내 머릿속에서 따로따로 놀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책 잘못 샀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 보니 그래도 5년 동안 성장했는지 놀랍게도 책이 읽혔다.

    마치 최근에 나온 책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책인 것 같다고 느껴질 만큼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놀라웠다. 또한, 동시에 5년 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이러한 문제는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선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2. 책의 구성

    책은 서론과 결론 부분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얘기하고, 본문에서는 성장하며 도덕적인 가치를 중시하며 산 여덟 인물의 삶을 각 챕터에서 다룬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이 길이 어떤 길이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걸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사실 서론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여덟 명의 일대기를 왜 읽고 있어야 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게 된다. 나는 5년 전에 그러했던 것 같다.

    결론부분에서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말한다. 또한 동시에 그는 우리는 부족하기에 그렇게 살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며 독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는 마치 한편의 설교같이 느껴졌다. 설교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3. 아담I(1)과 아담II(2)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제는 바로 아담I과 아담II다. 이는 랍비 조셉 솔로베이치크가 1965년에 쓴 "고독한 신앙인"에서 등장한 용어로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에 관한 두 가지 묘사가 우리 본성의 두 가지 상반된 면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두 본성을 각각 아담I, 아담II라고 불렀다.

    아담I은 커리어를 추구하고, 야망에 충실한 우리의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력서에 담길 덕목을 중시하는 외적인 아담이다. 아담I은 무언가를 건설하고 창조하고 생산하고 발견하길 원한다. 그는 드높은 위상과 승리를 원한다.

    아담II는 내적인 아담이다. 아담II는 특정한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고 싶어한다. 그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내적 인격을 갖추길 원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차분하지만 굳건한 분별력을 갖고 싶어 한다. 그는 선한 행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담I은 세상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반면, 아담 II는 세상을 섬기라는 소명에 순응하고 싶어 한다. 아담I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며 자신의 성취를 만끽하는 반면, 아담 II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세속적인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기도 한다. 아담I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의문을 가지지만, 아담II는 그것이 왜 존재하고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궁금해한다. 아담I의 좌우명이 '성공'이라면, 아담II는 삶을 하나의 도덕적 드라마로 경험한다. 그의 좌우명은 '박애, 사랑, 구원'이다.

    우리는 이 두 아담의 갈등 속에서 살고 있으며, 위풍당당한 외적 아담과 겸손한 내적 아담은 완전히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갈등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이 두 페르소나를 모두 충족시켜야만 하고, 따라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본성 사이에 생기는 갈등 속에서 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I의 인생계획은 선명하지만, 아담II의 인생 계획은 흐릿하다. 아담I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만, 아담II는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고 있다.

     

    출처_The Road to Character by David Brooks Animated Book Review

     

    4. 자신의 불완전성을 강조하는 도덕체계(겸양)에서 자신의 완전(중심)성을 강조하는 도덕체계로의 변화

    "I AM LOVABLE AND CAPABLE"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개인적 성취를 중요시하는 자부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러한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이러한 환경이 부정적인 영향만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경쟁 때문에 세계는 더욱 발전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본인의 한계를 넘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으로 전진하기 위해 '어떻게' 일할지는 가르쳐 주지만, '왜' 그 일을 하는지를 묻도록 장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청년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한 채 우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내가 뒤처질 테니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쟁적 압력 때문에 외적인 아담I이 성공을 향해 올라가게끔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관심을 쏟아붓는 대신, 아담II의 내적 세계는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 이 전통은 사람들로 하여금 타인의 인정을 받는 데만 몰두하게 하고, 외적인 찬사를 자신의 삶의 척도로 삼게 한다.

    소셜 미디어의 발전은 이를 더 크게 만들었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본성 중 빅 미(big me)와 아담I의 측면을 부풀리고, 더 겸손한 아담II의 힘을 약화시키는 도덕적 환경에 세 가지 영향을 끼쳤다.

    첫째, 소통이 더 빠르고 분주해졌다. 이 때문에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럽고 정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둘째, 소셜 미디어 때문에 자기 지시적 정보가 더 많아지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한 특정 문화와 정신적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와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됐다.

    셋째, 소셜 미디어는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려는 특성을 부추긴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소셜 미디어에도 양날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_ https://www.dreamstime.com/stock-illustration-work-life-triangle-diagram-image85665239

     

    5. 균형을 찾아가는 삶

    생각해보면 내 안에는 누구나 나를 알아봐 주길 원하는 성공하고 싶은 욕구도 있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내 일을 잘하는 겸손해지고 싶은 욕구도 있다. 언제나 이 마음은 항상 엎치락뒤치락한다. 때로는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나를 이끌며, 때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때는 정말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세상은 높은 곳을 바라보라고 한다. 목표는 항상 높게 잡으라고 한다. 성취적인 삶을 강조한다. 목표가 있으면 내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에 목표의 존재 여부는 항상 중요하다. 나 또한 한 주의 목표, 한 달의 목표, 한 해의 목표를 두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기에 내가 바라보는 것이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정상의 높이보다 바닥의 심연이 더 깊다는 것을 이해하자.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은 손실은 올바른 판단으로 얻는 이익보다 항상 더 크다.

    균형을 찾아가는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매번 바르게 살지 못하고, 내가 계획한 대로 못살기도 한다. 표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럴 때 나 자신을 자책하며 '이것밖에 안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이후 빠르게 다시 마음을 잡고 나는 목표를 향해 간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처럼 말한다.

     

    흔들린다고해서 절대 괴로워하지 말자. 결함이 있어도 괜찮다.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죄와 한계는 우리 삶에 올올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모두 발을 헛디디고 휘청거린다. 삶의 묘미와 의미는 발을 헛디디는 데 있다. 또한, 발을 헛디뎠다는 것을 인식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휘청거리던 몸짓을 좀 더 우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데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불완전한 본성, 실수, 결함을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지 않고 꾸밈없는 정직함으로 대하라. (p.475)

     

    휘청거릴 수 있다. 그러나 그 휘청거림을 좀 더 우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의 방어기제를 아는 것이 이 휘청거림을 좀 더 우아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 때,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완전히 연약한 상태가 되었을 때, 나를 완전히 드러내어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그 방어기제를 통해 우리는 균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자는 대화와 충고를 나눌 친구들과 함께하라고 권면한다. 휘청거리는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내가 가장 잘나갈 때 함께하는 사람보다 내가 가장 힘들때 함께하는 사람이 진짜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내가 가장 힘든 상태라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참 못한다. 특히 나의 힘든 것을 누구에게 말하지 않으려 하고, 나 홀로 마음을 다잡아 해결하려 한다. 나의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 때문인가, 아직 그렇게 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어쩌면 타인에게 내 마음의 짐을 덜어서 내가 마음의 짐을 더는 것이 정말 괜찮은 짓인가? 하는 생각이 더 큰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어린 시절을 자라왔고, 그것은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가 본인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느끼는 듯하다. 예전에는 그 말을 들으면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내가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인듯하다. 내가 나대로 자라갈 수 있도록 네가 너대로 자라갈 수 있도록 이 또한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