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5. 25.

    by. Conpresent

    1. 나에게 있었던 어떤 일을 회상하는 것은 마치 엔딩을 알고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군생활 또한 그러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을 하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경험을 했던 날들이기 때문이다.

    2. 먼저 카투사를 지원하게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 내 인생 첫 토익시험을 봤다. 그 때 내가 영어를 너무 잘해서 수능영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어서 토익을 공부했던게 아니다. 나는 그 당시 전국 모의고사에서 2등급을 맞은적이 단 한번밖에 없었고, 매번 3등급을 맞았다. 그런데도 토익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토익시험 유형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게 수능영어보다 더 실제영어 같았다. 

    3. 물론 학교 영어 선생님은 반대하셨다. 지금 수능영어 1등급이 나오지도 않는데, 무슨 토익영어냐며, 토익영어는 수능영어와 다르다고 말씀하시면서 수능영어나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치만, 나는 이번 여름방학때 토익시험을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계속 토익공부를 했다. 남은기간이 약 100일도 안되는 날로, 거의 매일 토익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우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4. 토익시험을 치른 결과는 840점. 시험을 볼때 느낌이 좋았던 터라 더 높은 점수를 기대했지만, 이 점수에도 만족했다. 그리고 이 토익성적은 거의 내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5.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보내고나니 친구들이 하나 둘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친구들과 지내던 나는, 나에게도 군대라는 존재가 다가왔음을 느끼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친구들이 ROTC 시험을 본다길래 나도 같이 보자며 신청해서 무작정 봤다. 시험 유형이 어떤건지도 모르고 풀러갔다가 시간내에 다 못풀어서 탈탈 털리고, 결과도 탈락! 

    6. 이젠 어쩌지, 그냥 집으로 입영통지서 날라오는대로 가자! 이렇게 마음먹고 바쁜 여름을 보냈다. 학교 MT, 교회 수련회, 수련회, 수련회 ... 그렇게 바쁘게 지내고 있었는데, 누군가 문득 말했던 거가 생각난걸까. 나는 갑자기 카투사가 생각났고, 바로 기숙사로 들어와서 언제 모집하는지 찾아봤다. 

    7. 알아보니 모집은 9월, 발표는 11월! 아마 이걸 찾아볼 당시가 거의 모집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2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됐을 때니깐. 지원 자격을 찾아보니 토익 780점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공인영어성적만 제시하면 된다. 나는 고3때 봤던 영어성적이 아직까지 살아있을때여서 바로 그 성적을 가지고 지원했다. 정말 카투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했다.

    8. 지원할때 자신이 지내는 지역을 선택하는 창이 나왔었다. 나는 본래 집은 경남이지만 학교가 충남이어서 충남지역을 선택했고, 그리고 이어 본인이 입대하고 싶은 달을 선택하는 창이 나왔다. 

    ** 카투사는 한해에 한번만 뽑는데, 그때 차후년도 인원을 모두 선발한다. 그리고 그때 지원자들이 지원하는 입대월마다 랜덤으로 선발하는데, 이 또한 지원자들에 따라 경쟁률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이 때 이런거 하나도 몰랐다.)

    9. 입대일을 언제로 할까 하다가, 중간에 가는 것이 좀 별로일것 같아서 그냥 2학년 다 마치고 가자! 라는 생각에 13년도 12월을 지원했다. 그리고 무슨 정신이었는지 내가 지원한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10. 그렇게 9월을 보내고, 10월을 보내고, 11월을 지내던 중 학교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내 폰에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엄만가? 하고 폰을 열어봤더니 병무청에서 날라온 문자! 바로 카투사에 합격했다는 문자였다. 그 순간 내가 지원했었다는 사실이 기억나며,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부모님께 연락하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SNS에도 올렸다. "어떻게 내가 이걸 지원한거를 잊어버렸지?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나보다." 하며 일단 군입대가 확정되어서 안심하며 나는 계속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11.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진행하지는 않았었다. 다만 내 상황에서 내가 준비된 것을 가지고 항상 해내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지 크게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이 올 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자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고,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 지냈던 것 같다. 

    만약 고등학교때 선생님의 의견을 따라서 토익공부가 아니라 수능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성적은 더 잘나왔을 수도 있다. 그렇게 수능공부를 해댔으니. 그렇지만 그 공부로 내가 즐거웠을것 같진 않다. 나는 내가 재미있는 공부를 선택해서 했다. 그리고 토익시험도 정말 잘해야 한다는 생각없이(조금은 있었겠지만) 큰 부담없이 봤다.

    처음 토익성적이 나왔을때 영어선생님이 내 점수를 물어봤던게 생각난다. 우리학교에는 영어선생님이 세분 계셨는데, 그 중 한분이 참 나를 아껴주셨다. 수능공부를 하라고 하셨던 분도 이 분이다. 이 분이 내 토익 점수를 물어보셨다. 

    "생각보다는 잘 못 봤는데 840점 나왔어요"
    "와! 진짜 잘봤네, 우리학교 선생님중에 너보다 점수 안나오는 사람도 있을거야 고생했다"

    기억에 남는 칭찬 중 하나다. 그렇게 시험치지 말라고 하셨던 분이 점수를 물어볼때 나는 속으로 '이 점수 받기 위해서 방학 내내 공부했냐, 수능공부를 더하지 그랬냐'라는 말을 어느정도 예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질타보다 진심이 담긴 칭찬을 듣자 나는 참 이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컸다.

    물론, 수능 날 외국어 영역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등급을 맞았다.

    수능 외국어 영역 1등급을 맞기 위해서 열심히 달리지 않고, 카투사가 되기 위해서 이것저것 백방으로 알아보며 준비하지 않아도 내가 준비한 것 만큼 결과는 얻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만족하고 욕심 부리지 않아야 한다. 

    "최선을 다한만큼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이제부터 군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나씩 생각나는대로 풀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