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5. 9.

    by. Conpresent

    트웬티나인팜스데저트-파커

    1. 오늘 달려야 하는 거리는 트웬티나인 팜스 데저트에서 파커까지 총 110마일 정도였다. 우리가 한 시간에 가는 거리를 주행시간과 휴식시간을 더하여 평균적으로 계산해볼때 1시간에 16km(10마일) 정도였다. 이에 의하면 오늘 달려야 하는 총시간은 11시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우려했던 것은 이 지역이 낮시간이 되면 숨을 쉬기도 어려울 만큼 더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새벽부터 달리기로 계획했다.

    새벽 다섯시 트웬티나인 팜스

     

    2. 우리가 아침에 정말 빨리 일어날것이라고 얘기하니깐 웜 샤워 호스트가 우리를 차로 자기 출근길까지 태워다 줬다. 한 8마일 정도 되는 거리일 것 같은데, 그 덕에 우리는 조금이나마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아침에 동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새벽 라이딩을 시작했다.

    이걸 볼땐 해낼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3. 얼마지나지 않아 이러한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이제 160km 뒤에 주유소나 마트가 나온다는 표시다. 어쩌면 오늘의 목표가 이 100마일을 안전하게 성공하는 것이었다. 웜 샤워 호스트조차 우려했지만 우리는 호기롭게 이곳을 향해 출발했다.

    사막구간의 모습

    4. 사막구간을 지나다 보면 똑같은 장면만 계속 보게 된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땅에는 모래와 이파리도 없는 작은 나무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잘 놓인 도로 이 모습이 계속된다.

    영상을 보면 그때의 더위가 생각난다.

    5.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막구간에서는 높은 산이나 언덕이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속도는 잘 나온다. 대부분 평지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순탄하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됐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영향이 커서 우리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6. 처음에 올린 자전거 기록을 보면 그날 달려야 할 거리는 약 170km 정도인데, 142km 밖에 기록이 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약 18km 정도가 사라져 있는데, 그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 날씨가 우리 발목을 잡았다. 일단 날이 더워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가서 주유소에서 가장 더울 때 쉬고 해가 좀 지면 나머지를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오전을 계속 달리고, 곧 시간이 지나 낮 12시가 되었다. 날씨는 이미 40도를 넘겼었다. 우리는 체력은 남아있는데, 더위에 어쩔 수 없었다. 그늘이라도 있으면 잠시 쉬어갈 텐데,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듯이 주변엔 모래와 이파리도 거의 없는 낮은 나무들밖에 없었다. 그늘이라곤 정말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물은 이미 열로 인해 끓을 것 같이 따뜻해져 있어서 물을 마셔도 뭔가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7. 다음 주유소까지 가려면 두시간정도는 더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이 시간에 라이딩을 더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자전거 탈 때는 그렇게 많이 보이던 트럭들이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하니,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보이는 차들도 우리를 그냥 쌩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몸은 계속 더워지고 있고, 뜨거운 물만 계속 마셨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8. 그러던 중 지프를 타고 가는 부부가 멈춰섰다.
        부부: 혹시 도움 필요해?
        우리: 자전거 타고 여행하는데, 지금 너무 더워서 더 이상 못 갈 것 같아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다.
        부부: 아.. 그래? 근데 우리 차에는 짐이 많아서 자전거 실을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멈춰서 물어봐줘서 고마워!
        부부: 혹시 괜찮다면 도로 경찰(highway police)이라도 불러줄까?
        우리: 그래 그 사람이라도 불러준다면 우리야 고맙지!

    9. 그 사람은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시를 찾아서 도로 경찰에게 전화로 전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와서 그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에게 와서 가까운 주유소로 데려다주겠다고 얘기했다. 다만 그가 타는 차가 자리가 부족하니 한 사람씩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호준이에게 먼저 그를 따라서 이동하라고 했고,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10. 호준이가 가고 난 뒤, 조금이라도 더 가볼까? 하는 생각에 자전거에 앉았는데, 그새 자전거가 열을 잔뜩 받아 뜨거워져있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바람 때문인지 그렇게 뜨겁지 않았는데, 잠시 멈춰있었더니 잔뜩 달아올라있었다. 그래도 조금 가보자고 생각해서 탔는데, 10분도 안되어서 더 이상 탈 수 없음을 깨닫고, 도로에 있는 작은 나무 밑으로 들어가서 경찰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11. 빨리 올 줄 알았던 경찰차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약 20-30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그만큼 주유소까지의 거리가 많이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내 짐을 싣고 주유소까지 가는데, 정말 다른 차들은 없고,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다 보니 정말 엄청 빨리 달렸다. 경찰차라서 괜히 긴장해서 눈을 정면으로만 두고 있어서 속도가 얼마였는진 모르지만 정말 빨리 달렸다. 그렇게 15분가량을 달려서 주유소에 도착을 했고, 호준이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경찰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뒤 우리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시원한 것을 사서 마셨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사서 먹고, 근처 그늘에서 누웠다. 일단 지친 체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으며, 해가 조금 지고 나면 남은 거리를 완주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12. 그늘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깊게 잠이 들었고, 오후 5시 정도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해는 뜨거웠지만, 정오만큼은 아니었다.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고, 빨리 숙소로 가서 푹 쉬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을 것이라 생각돼서 다시 이동했다.

    파커의 야경

    13. 두 시간 정도를 더 달려 오늘의 목적지인 파커에 도착했다. 오늘의 숙소는 모텔이었기에 모텔로 가서 방을 잡았고, 조금 쉬다가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고 나니 걸어 다니기에도 선선한 날씨여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늘의 색이 달라지는 것이 정말 예뻤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그러한 그림이었기에 더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다.

    14. 하루에 110마일을 간다는 것, 불가능하진 않다. 하루 종일 달리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간에 맞닥뜨린 더위라는 변수는 시간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내 능력과 시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변수를 맞닥뜨릴 때, 나는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리게 된다. 나의 능력을 내가 가진 시간을 과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다. 욕심부리지 않는 것, 상황에 맞추어 도움을 받을 줄 아는 법.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