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5. 14.

    by. Conpresent

    Flagstaff - Holbrook

    1. 처음으로 GPS 데이터가 날아갔다. 지도상에 내가 간 길이 붉게 표시가 되지 않았다. 물론 매번 정확하게 남기려고 목표했지만, 센서에 있는 배터리가 다 돼버리면 중간에 바꿀 수도 없어서 그대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종종 센서가 오류가 있긴 했는데, 그래도 정보들은 잘 남으니깐 그거면 된다. 어쩌면 이번에 내가 한 것을 남김없이 기록을 남기려는 나의 모습 또한 욕심일 것 같았다. 날아가버린 것은 아쉽지만, 날아가버린 대로 보내고, 나는 남은 것들만 잘 챙기면 된다.

    2. 세도나에서 아침을 맞았다. 지구의 기운을 받으러 오는 많은 이들과 함께 세도나의 정기를 받으며 하루를 열었다. 세도나는 참 조용하다. 그리고 어둡다. 아래로 움푹 들어가 산으로 감싸져 있다보니 날씨도 제법 선선하다. 어제 라이딩을 하면서 느껴지던 더위는 전혀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다. 스님께서는 계속 우리에게 하루 더 쉬었다 가라고 권하신다. 정말 너무나도 예쁜 곳이라 이곳을 속속들이 보고 싶은 마음이 참 크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루를 더 쉬게 되면 분명 어디서는 하루를 더 못 쉬게 된다. 분명 자전거 여행은 자유로운 것이 가장 큰 메리트인데, 우리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일정들이 잡혀있다. 그래서 시간을 맞춰서 도시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의 힘든 점이다. 여행을 하다가 몸이 지치게 되면 하루 더 쉴 수 있고, 보고 싶은 게 있다면 하루 더 보고 가도 되는 그런 자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우리는 여행으로 온 게 아니라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그리고 일정대로 도착하면 우리는 그 도시에서 더 길게 쉴 수 있다고 위로한다. 그렇게 오늘도 하룻밤만 머물고 다음 장소를 향해 핸들을 향한다.

    카지노에서 먹었던 아침

    3. 스님은 우리의 뜻을 꺾지 못하셨고, 우리를 플래스스태프 근처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근처 카지노에서 아침 조식을 먹고 출발하라고 하셨다. 웬 카지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지노에서는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식당이 24시간 운영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 조식이 저렴한 가격에 괜찮다고 괜찮은 음식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카지노 식당에 들어가서 우리는 오믈렛, 혹은 스크램블을 다들 시켰다. 나도 야채가 들어간 스크램블을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사실 팁을 내는 것이 아쉬워 최대한 패스트푸드를 이용하던 우리에게 이런 건강한 음식은 몸에 활기를 주는 것 같았다.

    범휴스님과 함께

    4. 식사를 다 마치고, 우리는 카지노를 조금 벗어나 큰 길로 올라가는 길에서 짐을 자전거에 묶었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어제오늘 너무나도 큰 대접을 받고 가는 것 같았다. 잘 쉬어서 그런지 몸은 한층 가벼운 듯했지만, 또 라이딩이 시작됨에 몸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이럴 때 잠시 머뭇거리는 시간은 더 마음을 주저하도록 했다. 그럴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3초를 세고 바로 자전거에 올라타야 했다. 3,2,1 

    "감사합니다! 저희 가보겠습니다!"

    보수한지 얼마 안된듯한 길

    5. 플래그스태프를 떠나자마자 느끼게되는 것은, '아! 나 아직 여전히 애리조나에 있었지'라는 생각이다. 플래그스태프에서 봤던 무수한 나무와 세도나의 울창한 숲은 언제 봤냐는 듯 다 사라져 버리고 다시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 나를 맞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길게 그리고 곧게 놓인 도로는 우리를 동쪽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마치 이렇게 곧게, 그리고 평지 혹은 내리막이기만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포장한 지 얼마 안 된 새 길이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 나 아직 애리조나에 있었지

    라이딩 모습

    6. 이곳은 유달리 Shoulder(갓길)가 넓었다. 그래서 차도에서 조금 떨어져서 여유롭게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길마다 다르긴하지만 Shoulder가 좁은 곳은 차도 우리를 조심하고, 우리도 차를 조심해야 한다. 그럴 땐 운전자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그들에겐 오늘이 평소와 다르게 불편한 날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운전자들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라이딩을 하려 했다. 갓길이 넓어도 차도 쪽으로 붙진 않았다. 

    저 멀리보이는 TA 휴게소 사인

    7. 저 멀리 TA 휴게소 사인이 보인다. 라이딩 중에 발견하는 휴게소들은 정말 반갑다. 거의 보이는 곳마다 챙겨 들어가려 한다. 가면서 시원한 스포츠음료, 초콜릿우유를 마시며 목을 축이고, 몸을 시원하게 식히고, 체력을 채운다. 미국에는 수많은 휴게소들(사실은 Gas station, 주유소)이 있다. 그중 TA는 장거리를 운전하는 트럭 운전사 분들에게 특화되어있다고 한다. 가보진 않았지만, TA에는 샤워실과 잠을 잘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트럭 운전사분들은 TA를 애용하신다고! 실제로 휴게소를 들어가면 수많은 대형 트레일러들이 줄지어 정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애리조나에서는 대부분 공회전을 하고 있는데, 아마 잠시라도 시동을 꺼두면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금방 열을 받아 더워져서 그럴 것 같다.

    오늘의 숙소

    8. 오늘은 루트66모텔에서 하루를 쉬기도 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횡단을 하며 모텔에 머물게 되는 날들이 좀 있었다. 다수의 경험을 통해 분석해 봤을 때 모텔 숙박업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인도 분들이 많았던 것 같고, 아시아 계 쪽 분들이 카운터에서 앉아계시는 모습을 자주 봤다. 모텔 숙박업이 대중적인 메이저 사업은 아닌 것 같았다. 이들에게는 이곳이 그들의 생계를 이어가도록 하는 곳이었으며, 아메리카 드림을 이뤄가는 곳 같았다.

    반장갑의 빈공간만 탄 내 손

    9. 문득 내 손을 보았다. 라이딩을 할 때 반장갑을 끼고 라이딩을 하는데, 손이 가려지지 않는 부분만 탔다. 손가락 부분과 팔토시와 장갑 사이 손목부분. 만약 얼굴에 목토시를 두르지 않고, 팔 토시를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탔을지, 그리고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이 또한 하나의 추억이기에 사진으로 찍어뒀다. 그리고 그냥 손을 전체를 다 태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이때부터 반장갑을 그냥 벗어버렸다. 

    10. 오늘도 애리조나의 야경은 아름답다. 밤이 저물어갈수록 시간에 따라 사진에 참 다르게 찍힌다. 그 날의 모습을 내 눈에 또 담고 나는 하루를 이렇게 보낸다. 세계가 참 크다는 것과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큰 도움들이 어디선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