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5. 31.

    by. Conpresent

    Amarillo - Shamrock

    1. 오늘은 100마일을 도전하는 날이다. 예전에 애리조나에서 100마일을 시도했다가 너무 더운 날씨에 중간에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포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지만, 여기까지를 이틀에 걸쳐서 가기에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다른 데서 하루를 더 늘릴 수 있으면 늘리지, 여기서는 하루 만에 가보자고 얘기했다. 구글 맵으로 봤을 때도 길이 대부분 평탄해서 크게 업힐을 겪지 않을 것이라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머릴로 숙소를 나오자 마자 보이던 일출

    2.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 일출을 보며 라이딩을 했다. 오늘 또한 짐을 다 챙겨서 숙소를 나오자마자 일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일출을 보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일출을 보는게 일상이다.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아직 끝나지 않은 라이딩이지만, 끝나면 무얼 할지, 끝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나를 생각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지금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주로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이루지 못하기에 목표로 하기에만..)

    구름의 형태가 너무 신기해서 찍은 사진

     


     

    오늘도 화창한 날

    3. 오늘도 화창한 날의 연속이다. 전에는 구름이 없는 하늘이 익숙했는데, 이젠 점차 구름이 있는 하늘이 익숙해지고 있다. 구름이 많이 생길수록 우리에게는 햇빛을 잠시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생기게 되기에 구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구름이 해를 잠시 가리울때 우리는 최대한 또 힘을 내서 달려본다. 그 순간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그러다 다시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올 때, 우리는 천천히 바람을 느끼며 달린다. 

    라이딩 중 만난 라이더들

    4. 라이딩을 하다보면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간혹 만나곤 한다. 아마도 대부분 주변지역에서 거주하는 이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손으로 인사를 하거나 목례를 하곤 한다. 자전거를 타는 이들로서 서로 모름에 불구하고 우리는 약간의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라이딩을 하던 중 위의 사진의 여성분이 우리 맞은편에서 오더니 갑자기 우리를 보더니 속도를 줄이면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장거리 여행을 한다기엔 짐이 너무 없어보여서 주변에 사는 분이신가 보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미국 횡단하는 중이냐고 물어봤다. 우리는 올쿠나 하고 우리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눈 지 십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뒤쪽에서 자전거를 탄 라이더 여럿이 다가왔다. 우리도 이들이 궁금해서 어떤 것이냐고 물으니, 이들은 루트 66을 따라서 자전거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하는 중이라고 했다. 여행사 비슷한 곳에서 하는 것 같은데,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다. 이들에게 들었던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하자면 이와 같다.

    매일 아침 전체 그룹이 출발하기 전에 가이드 라이더가 미리 오늘 갈 길을 가면서 스프레이로 길을 표시한다.
    그룹의 앞,뒤에서는 길을 인도하는 가이드 라이더가 있다.
    뒤에서는 밴이 따라오고 있기에 자전거에 문제가 생기거나 쉬어가고 싶은 사람은 밴에 자전거를 싣고 이동할 수 있다.
    물론 밴에는 물과 간식거리가 가득하다
    매일 숙소와 매 끼니 식사가 제공된다.
    이 모든 것을 200만원 정도에 즐길 수 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밴이 제일 부러웠다. 후.. 횡단하면서 길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게 여행을 가는 차량들이다. 밴이나, 보트를 뒤에 달고 달리는 트럭들. 옆에는 게토레이가 담긴 아이스박스를 끼고 에어컨을 맞으며 얼마나 시원하게 달리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신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차로 달리면 이런거 하나하나 다 못 느끼잖아! 나는 너희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얻고 있어!'

    ... 그래! 우리는 우리의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자 생각했다. 뜻깊고 대범한 프로젝트를 한다는 이들의 말에 또 힘을 얻고 우리는 앞으로 나갔다.

    오늘은 그래도 꽤 나름 평지만 달렸다.

     


     

    멀리서 보이는 집중 호우

    5.

    "형!" "형!!" 

    뒤에서 호준이가 나를 부른다. 

    '아, 또 펑크났나보다.'

    "왜?!" 

    호준이는 손가락으로 옆을 보라며 오른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달려오면서 뭐 특별하게 본 게 없는데 뭐지?'

    옆을 바라보니 거대한 검은 구름이 한 곳에만 길게 무언가를 늘어뜨리고 있는 게 보인다. 저게 뭐지? 했는데 이내 그것이 비가 내리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정말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저기만 저럴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저기 비가 내리고 있는 곳이 작아 보이지만 그래도 꽤나 넓은 반경에 내리고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사진은 너무 평온하게 나와서 억울해

    6. 위의 영상에서 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듯 정말 바람이 많이 분다. 아무래도 산이 없다 보니 더 바람이 여러 곳에서 불어오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가 달릴 때는 유달리 바람이 우리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우리는 편할 때는 모르다가 불편할 때 깨닫게 되듯, 바람이 우리를 막아설 때 우리는 그제야 바람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라이딩을 하면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대부분을 찍은 게 아쉽게 느껴지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그때의 생동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리도 없고,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움직임도 하나도 없다. 특히나 사진은 우리의 어려움이 하나도 담기지 않고, 너무나도 좋은 경치만 남긴다. 그래서 몇 개 찍지 않은 영상들은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다. 좀 더 영상으로 많이 찍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 나에게 남은 여행들이 무수히 많으니깐 그때부턴 잘해보자. 

    거대한 옥수수 밭

    7. 앨범을 보다 보면 내가 이걸 왜 찍었지? 하는 것들이 있다. 분명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찍었을 텐데 생각하며, 영상을 다시 보며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 영상 또한 그랬다. 그러다 영상 중반쯤 내가 이걸 왜 찍었는지를 알게 됐다. 오른쪽에 보이는 넓은 밭이 지금 다 옥수수다. 위에서 찍어서 좀 옥수수가 작게 나왔지만, 다들 나보다 키가 크다. 그런 게 정말 끝이 보이지 않게 넓게 다 퍼져있다. 옥수수밭 하면 생각나는 게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장면이다. 놀란감독이 그 장면을 CG로 하지 않고, 한 컷을 위해서 3년 동안 옥수수를 키운 다음 한 번에 불태웠다는..! 여기를 와보면 그 장면을 충분히 찍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징그럽다 옥수수)

    아 .. GPS 안찍혔다. 이런 오류는 항상 아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