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6. 8.

    by. Conpresent

    머물렀던 숙소의 조식

    1. 감사하게도 오클라호마시티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와주시는 한인회장님 덕에 편히 쉴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나온 조식이었다. 여태까지 머물렀던 숙소 중에 조식이 가장 다양하게 나온 곳인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새벽같이 출발하다 보니 조식을 먹지 못하고 숙소를 나서야 할 때가 훨씬 더 많았었다!! 정말 그때는 조식보단 낮에 내리쬐는 햇빛이 더 걱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과감히 조식을 포기하고 아침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라이딩이 없기 때문에 아침에 여유롭게 짐을 챙겨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2. 원래 계획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조금 쉬고 다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프로젝트를 알고 연락을 주신 털사에 사시는 경란집사님께서 털사에서 하루만 머무는 게 아쉬워 우리에게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머무는 시간을 털사에서 보내라고 제안해주셔서 감사하게 우리는 오클라호마시티의 숙소에서 하루를 푹 쉬고 털사로 이동하려 했다. 경란 집사님이 아시는 동생분이 있는데, 오클라호마시티와 털사에서 뷰티숍을 운영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사업차 털사와 오클라호마시티를 자주 왕래하시는데, 아마 토요일이라서 털사로 들어올 것 같다고 한번 연락을 해보시겠다고 했다. 

    3. 마침 털사로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에 우리를 픽업하실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동생분께 연락을 드려서 우리가 머무는 숙소를 말씀드리고 픽업을 받았다. 가는 길에 본인이 운영하는 뷰티샵을 들렀다 가자고 하셔서 우리는 Anna이모님이 운영하시는 뷰티숍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어떤 사업을 하시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었다.)

    4.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뷰티샵은 흑인들을 고객으로 하는 다양한 미용소품을 파는 곳이었다. 주로 가발을 팔고 있었고, 그 외에 머리와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과 염색약 그리고 여성들이 쓰는 화장품, 머리띠 등 정말 다양한 미용소품들이 매장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흑인들은 대부분 가발이나 붙임머리를 한다고 한다. 그들 머리 자체가 굉장히 곱슬이기 때문에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를 피더라도 곧잘 다시 말리기 때문에 자주 해줘야 해서 그 또한 돈이 크게 들어간다고.. (미국은 커트만 하더라도 비용이 크기 때문에 이해가 됐다.)

    여기저기 가발을 쓴 마네킹들이 보이자 참 으스스하긴 했다. 하지만, 매장을 구경하는 많은 손님들을 볼 수 있었고, 카운터에는 흑인 알바생들이 두 세명이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흑인들이 주 고객층이다 보니 흑인 아르바이트생을 두는 것이 당연한 것 같았다. 

     

     

    5. Anna 이모님은 아시는 분이 근처에서 식당을 하신다고 미리 말해뒀으니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식당 사장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식당의 분위기는 정말 아늑했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식당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독자분들은 사진만 보고 혹시 어느 종류의 식당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나?

     

     

     

    오늘의 점심메뉴는 바로 일식이었다. 식당에 오기 전에 Anna 이모가 초밥같은 거 혹시 좋아하냐고 물어보시는데, 정말 얼마 만에 먹는 일식인지, 너무 좋다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이모님께 들을 수 있었는데, 미국인들은 한국인처럼 생선을 회 썰어서 그대로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를 썰어도 숙성시킨 것을 좋아하고, 주로 Rolls를 많이 먹고, 그리고 초밥, 그리고 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는 좀 반대인 것 같아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문화에 따라 식생활이 다르다는 신기한 것을 또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가락국수를 하나씩 시켜서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우리를 경란 집사님 댁까지 태워주셨다. 다음에 또 볼 기회가 있으면 보자고 하셨는데, 정말 잠깐 본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다. 미국에서 돌아오기 전,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지속적으로 연락드리고 있는데, 참으로 감사한 분 중 한 분이다.

    식사를 하며 Anna 이모와 얘기를 나눈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에서 건너와서 이곳에서 살면서 겪은 얘기들이었다. 유학으로 미국을 왔다가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결국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계속 오클라호마 주에서 지내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뉴스에서 보던 허리케인과 폭풍들은 대부분 오클라호마주를 항상 거쳐간다고 한다. 한 일화를 들려주시는데, 집에서 뉴스를 보는데 본인이 살고 있는 동네에 허리케인 영향권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보고는 밖을 쳐다봤는데, 옆집이 날아가고 없더라는 얘기였다. 딱 본인의 집 주변을 경계로 다른 데는 다 피해를 봤었다며, 그때 허리케인의 무서움을 처음 실감했다고 하셨다. 아비규환이 정말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하셨다. 우리도 실제로 허리케인을 본 적은 없지만, 정말 그것을 닥치게 되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털사 한인교회 모습
    털사 한인교회 내부 모습

    6. 경란 집사님 댁에서 인사를 드리고, 짐을 풀고 쉴 수 있었다. 집사님께서 "오늘 (토요일) 교회에서 청년부 예배가 있으니 가서 함께 예배하면서 인사도 좀 하고, 얘기들 좀 나누자."고 말씀해주셔서 우리는 교회로 향했다. 주일마다 교회를 가지 못하다 보니, 이렇게 교회를 오게 되면 참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 정말 신기한 게, 한국에서는 교회 가는 것이 일상이 돼서 때로는 교회 가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보니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고 싶은 마음이 참 커진다. 그리고 설교를 들으면 더 귀에 들어왔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이것이 일상이 될 때, 습관이 되고, 습관은 안정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루하게 만들어 버린다. 내게 습관이 되어 지루하게 되어버린 것들은 없는지, 더이상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약해진 것은 없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일상 속에서 습관이 된 것들을 조금씩 변화를 주며, 매 순간 새로 마음을 다시 잡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털사에서 만난 귀한 인연들

    7. 털사한인교회는 예배당 반대쪽에 강당 겸 식당이 있다. 오늘은 반쪽만 식탁을 펼쳐놓고, 반쪽에서는 아이들이 농구대에서 농구를 하고, 벽에다 공차기를 하고 있었다. 애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교회에 와서 즐기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이곳에서 만난 청년들은 다음 글에서 좀 더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