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6. 23.

    by. Conpresent

    Bartlesville - Cherryvale

     

    1. 이제 오클라호마 주를 벗어나 캔자스 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순조롭게 라이딩을 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기에 매번 라이딩은 감사가 넘쳤던 것 같다.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되었고, 라이딩을 시작한 날은 25일이 되었는데, 라이딩 중에 비를 맞은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고, 그 조차도 약간이었고, 바로 몸을 쉬게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에 젖어있는 길

     

    2. 오늘 오전에 라이딩을 하는데 땅이 여전히 젖어있는 것을 보니, 어제 우리가 라이딩을 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비를 맞았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는 바퀴 아래쪽에서 조금씩 튀어 오르는 물방울의 소리를 느끼면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아스팔트 길에 아주 얕게 깔린 빗물을 지나갈때 나는 그 소리가 참 좋다. 한국에 있을 때 차로 지나갈 때도 그 소리를 종종 듣는다. 토도독 톡 톡 토도독독. 마치 닫힌 창문에 빗물이 다가와 부딪히는 소리 같다. 그럴 때 나는 반투명인 창문을 열어 비가 오는 것을 바라보며 소리를 듣곤 했다. 그 소리는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페달을 밟을 때 마다 바퀴가 돌아갈 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튀어 오르는 편안한 마음과 함께 라이딩을 시작했다. 

     

    캔자스 주 입성!
    그리고 옥수수

    3. 캔자스 주로 들어오니 밭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대부분 옥수수였다. 오클라호마 주에서도 봤던 옥수수들이 여기서도 열심히 우리 키를 넘어 자라고 있었다. 정말 우리가 흔히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다 크다'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는데, 정말 이들이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정말 그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스케일이 아주 다르다. 

    우리가 달리는 길 옆으로 놓인 밭을 보면서 라이딩을 하다보니 이전에 애리조나에서 식물이 하나도 없던 때가 생각난다. 정말 죽은 것 같이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할 것 같아 보이던 곳을 지나 이제는 생명이 풍부한 곳을 우리가 지나고 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느끼며 라이딩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전거로 여행을 하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편한 여행에서는 순간만을 기억할 뿐, 그곳의 공기, 온도를 제대로 기억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나는 큰 도로가 아닌 작은 로컬길을 따라 라이딩을 하는 것이 더 좋다. 물론 길은 조금 돌아갈 수 있겠지만, 차들이 훨씬 적고, 차들의 속도도 느리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개는 줄어든다. 그러면 다른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그러다 보면 내가 얼마나 달렸는지, 내 몸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를 잊게 된다.)

     

    4. 이러한 로컬 길을 다니다 보면 Verizon의 커버리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글을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호준이는 T-Mobile을, 나는 Verizon을 쓰고 있다. 

    <서로 다른 통신사를 쓰게 된 이유>
    https://1185600.tistory.com/14

     

    #8 _ 미 대륙 자전거 횡단 3A Project in LA (2) 18.06.19.

    1. 드디어 WI-FI 생활을 벗어났다! 한인타운으로 가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SIM 카드를 구매하여 번호를 부여받았다. 사실 미국에서 사용되는 통신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이때는 아무거..

    1185600.tistory.com

    라이딩을 할 때, 우리는 각자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스트리밍을 이용해서 노래를 듣는다. 휴대폰을 핸들에 거치하고 노래를 틀면 딱 나만 들을 정도로 노래가 잘 들린다. 상대방이 듣는 노래가 뭔지는 모르지만, 노래를 듣는지는 알 수 있을 정도다. 노래를 듣지 않으면 약간은 지루하기도 하고, 더 지치는 것 같다. (때로는 노래가 지겨워서 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라이딩을 하다 보면, 호준이의 자전거가 조용할 때가 있다. 바로 T-mobile이 터지지 않을 때다. 특히 캔자스주-미주리 주에서 그런 날들이 잦았다. 그래서 호준이가 라이딩을 하면서 참 심심해했었다. 

     

    체리베일 입구

     

    5. 어제 조금만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비를 조금 맞은 것이 아무래도 쉽게 무시하고 지나칠 만큼 가볍지는 않았나 보다. 오후가 되니 우리 몸이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원래 가려고 했던 도착지는 Chanute, KS였다. 거기까지 가려면 몇 시간을 더 달려야 했는데, 아무래도 계속 우리 몸을 무리하면서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최대한 빨리 몸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둬야겠다는 생각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획을 바꿔서 중간에 서게 되었다. 오늘 머무는 곳은 바로 체리 베일. 사실 동네 이름에 체리가 들어간다니 좀 상큼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마을의 입구를 나타내는 사인은 그 어떤 마을보다 예술적으로 색이 칠해져 있다. 하지만, 그 동네에는 모텔이 두 군데밖에 없는데, 심지어 그중 하나는 약간 한국의 펜션과 같은 분위기로 집이 여러 채가 있는데, 그것을 빌려주는 것 같았다. 하룻밤 머물러도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어느 집을 두드려도 주인이 나오지 않아 머무를 수 없어서, 결국 다른 모텔로 갔다.

     

     

    6. 두 번째로 찾아간 모텔은 내부를 공사하고 있었다. 집주인분이 직접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모텔이 되게 오래된 곳이라고 엄청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참 오래된 것의 가치를 지키는 것을 소중히 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주로 집에 대해 그런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조금만 오래되면 재개발한다고 부시고, 아파트 단지 짓는다고 부시는데, 미국은 집을 고치면서 계속 산다. 그리고 이 집에서 살았던 전 주인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며, 집의 역사를 그들이 기억하고 만들어간다. 그들의 이런 모습이 나는 참 인상 깊었던 것 같다.

     

    모텔주변 모습

    7. 작은 동네라 정말 뭐가 없다. 저녁을 먹을 곳도 한참을 걸어서 찾아갔고, 오늘 밤에 간식으로, 그리고 내일 아침으로 먹을 것들을 사기 위해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오늘은 퇴근했기 때문에 또 자전거를 타고 밥을 먹으러, 마트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마을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고, 직접 발로 밟으며 내가 이곳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교회의 안내판

     

    8. 동네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그 밑에 있는 문구가 너무 인상 깊어서 사진으로 찍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너무 비슷하고, 무조건 복만 강조하는 교회들에 비해 저렇게 당당하게(?) 적어놓은 것에 대해서 신기했다. 하나님을 통한 믿음으로 세상에 나가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며 재미있게 살자. 오늘도 이렇게 또 페달을 더 밟아나갈 힘을 얻는다.